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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 연산면

    연산지방의 삼국시대지명은 황산군으로되어 있다가 고려시대에 연산군으로 개편한데서부터 연산이란 지명이 나타나게 되었다. 연산의 천호산은 그 산세가 연이어져 있어 연이은 산이란 뜻에서 연산이란 지명이 생겨난 것 같다.

  • 화악리

    뒷산이 꽃으로 두른 언덕이라 하여 화악이라 불렀다 하며, 뒷산 이름도 화악산이라 한다. 본래 연산군 식한면의 지역이었는데 화악산 밑에 있어 화악골 또는 화악이라 불러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수락리, 청동, 이곡의 일부를 병합하여 화악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화악리는 오계의 사육지로 옛날에는 역대 임금께 진상하였다.(천연기념물 제265호)

  • 천호리

    천호리는 본래 연산군 식한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개태리,호동,화악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천호산의 이름을 따라 천호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천호리에는 천호산이 있고 고려의 개국사찰인 개태사지와 개태사가 있다.

  • 송정리

    연산군 식한면의 지역이었는데 소나무 숲에다 정자를 만들었다하여 소정이 또는 송정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개태리, 한림정리, 산노리, 북계리, 상송리, 하송리, 호동, 천호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송정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송정리에는 한학을 익히며 살아가고 있는 한학마을이 있다.

  • 신암리

    연산군 군내면 지역이었는데 큰바위가 많으므로 신암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황령리를 병합하여 신암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 연산리

    연산현의 소재지로서 연산읍내 또는 읍내리라 하며, 또한 현내면이 되어 구아동,백애,월양대,일양대,신암,옥계리,백림동,옥전리,중리의 9개리를 관할하여 오다가 고종 31년(1894년)에 군내면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촌리,북촌리,신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연산리라 하여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연산리의 연산시장은 대추의 집산지로 전국 유통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연산현의 상징으로 연산아문(도지정유형문화재 제9호)이 원형으로 보존되어 있다.

  • 고정리

    연산현의 지역으로 전에 큰절이 있었으므로 붉절골 또는 적사곡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거절터 또는 거정터, 거정치, 거정대라고도하며, 또한 적사곡면이葡 되어 청동,범남,풍덕,충곡,거사티,안천,성겁,성내의 8개리을 관찰해 오다가 1895년(고종32년)에 연산군 내적면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우수리,거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고정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고정리에는 허씨 부인의 정려와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의 사당, 예학의 태두 사계 김장생의 사당과 묘소가 있다

  • 한전리

    수정리,거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한전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되었연산군 내적면의 지역이었는데 벌판이 있으므로 한밭 또는 한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하범리, 흔황리다.

  • 임리

    연산군 외성면의 지역이었는데 숲이 울창하므로 숲말 또는 임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산리,신심리, 남리,학정리,상림리,중림리,하림리와 내적면의 상벌리를 병합하여 임리라 하였다. 임리에는 신독재 김집의 사당이 있고, 예학의 태두이신 사계 김장생을 주벽으로 모신 돈암서원(국가사적 제383호)이 있다.(돈암서원에는 사계 김장생, 신독재 김집,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등 4분의 위폐가 모셔있는 선정서원이다)

  • 관동리

    연산군 식한면의 지역이었는데 계백장군이 신라의 16세 소년 관창을 사로잡아 그 의기를 가상히 여겨 살려보냈는데 관창이 다시 침입하므로 부득이 잡아 죽인 이곳을 관창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관청골 또는 관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교촌 일부를 병합하여 관동리라 하고 산면에 편입되었다. 관동리에는 보물이 지정되어 있는 성주도씨의 종중 문서가 있고 공립교육기관이었던 연산향교가 있다.

  • 고양리

    연산군 백석면의 지역이었는데 괭이다리가 있으므로 괭잇다리 또는 고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식한면의 교촌리와 하교촌리를 병합하여 고양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 표정리

    연산군 백석면의 지역이었는데 자갈이 많고 물이 적어서 가물면 샘물이 말라 식수의 곤란이 많아 표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표리,중표리,하표리,신표리,신범리,당곡리의 각 일부와 외성면의 고양교, 청림리 일부를 병합하여 표정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표정리에는 남편의 뒤를 따라간 열녀 이씨부인의 정려가 있다.

  • 덕암리

    연산군 백석면의 지역이었는데 뒷산에 큰 바위가 있어 덕바우 또는 덕암리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행정리, 도구리를 병합하고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 장전리

    연산군 백석면의 지역이었는데 밭이 길고 넓어서 진밭들 또는 장전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장항리,덕암리,당곡의 각 일부와 외성면의 청림리,왕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장전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 백석리

    연산군의 지역으로 흰돌이 많으므로 흰돌,흔돌 또는 백석이라 하였으며 또한 백석면이 되어 덕암,당곡,상암,상표,중표,하표, 신표,신범,고양교,행정,도구,덕산,용산,망덕,덕곡,신소,평촌,사포,귀암,어은,일음,탄동,상오,하오,부황,장전,장항,신정,송산,구정,사편,삼송,산소의 33개리를 관할하여 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덕산리,용산리,망덕리,덕곡리,신소리,평촌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백석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백석리에서 애국계몽운동의 기수 최경하씨는 야학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여 애국정신을 함양하기도 했다.

  • 어은리

    분지지형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일음골 밑에 있다. 아래에는 어은지가 있다. 연산군 백석면의 지역이었는데 은골 또는 어은,어은동이라 하였다.

  • 청동리

    연산군 내적면의 지역이었는데 이곳에서 청동이 나왔다하여 청동골 또는 청동리라 하였다.

  • 사포리

    연산군 백석면의 지역이었는데 살포재 밑에 있어 살표재 또는 사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귀암리,신정리,신소리, 평촌,구정리의 각 일부와 외성면의 소원리,개정리와 노성군 하도면의 숙진동 일부를 병합하여 사포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 송산리

    연산군 백석면의 지역이었는데 소나무가 무성하였으므로 솔미 또는 송산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정리 일부와 외성면의 부황리,청림리,중외리,하외리,왕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송산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 오산리

    연산군 백석면의 지역이었는데 오구산 있으므로 오구미 또는 오산, 구산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오리,하오리,송산리,부황리의 각일부와 노성군 하도면의 노오리일부를 병합하여 오산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 신양리

    연산군 모촌면의 지역이었는데 신씨가 처음 이룩한 마을이라 하여 신량뜸 또는 신양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하량리,황산리,시목동,중명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양리라 하고 양촌면에 편입되었다가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11027호에 의해 연산면에 편입되었으나, 황산벌의 중심지로, 돌맹이 하나 흙 한줌에도 계백장군과 5천 결사대의 유혼이 깃든 유서깊은 고장이기도 하다.(이곳 신양리 황산벌에 계백장군의 동상과 충혼탑을 건립할 예정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 32987 충청남도 논산시 시민로210번길 9 (내동) 대표전화 ☎1422-17 / 당직실 ☎041-746-5700~2 | FAX. 041-746-5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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